교권에 안녕인사를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특이하게도 선생님께 안녕인사를 했다. 지금 기준에도 한국문화에는 어색하지만 그 경험이
내 평생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외국에서 안녕인사를 하면 평등한 것이지만 한국에선 예의 없는 놈
가르침이 과거에는 교권에 복종이었다면 지금은 교육자와 학생이 동등하고 상호존중해야 하는 시대
과거의 꼰대들은 현재의 세대를 끈기없다 하고
현재의 청춘들은 과거의 꼰대를 가정과 개인이 없는 허울이라 하지
겸손의 시대에서 자기PR의 시대로 왔지만
과거와 현재 세대와 가르침이 공존하니 누굴 욕할까
권위를 버리자니 이미 배운 가르침과 편견에 모순이 생긴다.
법학교수들은 대한민국 헌법에 평등과 주권 행복추구권이 쓰여있으나
권위를 버리지 못하고 과거의 잘못을 답습한다.
내가 아는 헌법을 가르치는 교수는 수강변경기간인 첫 수업에 안 들어온 학생을 본 적도 없으면서 수업권을 박탈하였다.
낮은 곳에 처하든 높은 곳에 처하든 동요하지 않는 것
그 어떤 것에도 태연할 수 있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가 지향할 방향이 아닐까
다양성을 인정하고 어지럽고 혼란스럽지만 이해하는 것
하나의 기준을 만들고 따르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탈근대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관용과 사랑 그리고 장르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것, 단순하게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것
내가 말하려는 건 왕자가 구세주가 아닌 여성주체적인 엘사의 겨울왕국
흑인 인어공주, 동성 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수직으로도 보고 수평으로도 보고 과거에서부터 우주에서부터 넓게 보고 다양한 틀을 갖자는 것이다.
'사는 게 다르다'가 돈이 있고 없고 말고도
장르의 차이가 있다.
코미디 누아르 순정 멜로 등등
고딕, 명조 글씨체에 따라서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돈이 먼저 떠오른다면 그대는 이제부터라도 다양한 삶을 만나고 이해하라.
강북강남 흑수저금수저 나누는 것은 기자들의 잘못이다.
사람들을 그 기준 외에는 판단할 수 없는 바보로 만든다.
사람 따라 다르고 그 기준과 패러다임에 따라 다르다.
꼭 서양의 것이 좋다는 것도 지식인들의 잘못이다.
서로 좋은 점 배울 점이 있고 비슷한 오류도 같이 가지고 있다.
상호존중을 위해서는 자존감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
항상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해야 하고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되며
패러다임을 만들지 못하고 따라가서는 안된다
나 또한 혼란 속에 있으며 하나의 기준에 흔들리지만
모든 사실과 그에 기초한 판단은 심층적으로 다채로운 기준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는 습관을 가지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연단하고 채찍질한다.